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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월 회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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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변화무쌍한 달입니다. 날씨가 참 좋다가도 추울 때도 있고, 대학가는 가장 역동적인 시기이죠. 제 일상은 이런 모습을 그대로 반영했나봅니다. 이 계정은 저의 번뇌와 고민과 깨달음을 기록하고자 만들었습니다. 적어도 이 글을 쓰는 동안은 저의 삶을, 일상의 생각들을 한 발짝 떨어져 살펴볼 수 있죠. 그만큼 솔직해질 수 있습니다만, 이번 5월,6월,7월은 그럴 수 없을 것 같다는 점을 미리 말하고 싶어요.
저는 감정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 잘 안 됩니다. 그 느낌을 곱씹는 편이에요. ‘왜 그런 느낌을 받았을까?’, ‘그런 감정은 어떻게 다루고 해소해야하지?’, ‘그런 감정을 다시 안 느끼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와 같은 생각을 합니다. 어떻게 보면 과거에 의미를 많이 두고 얽매이는 거라고도 할 수 있고, 리스크 회피 성향이 짙어 겁이 많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다보니 생각이 점점 많아집니다. 발산하는 모든 생각들의 중심은 ‘존재의 부정’일 것 같네요. 특히 그 요인이 내부가 아니라 외부일 때, 그리고 그것이 애정을 가지고 있던 대상이자 제가 어찌할 수 없는 존재이며 현상임을 깨달을 때는 마음을 다루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 요인들이 하나가 아니었고, 여러 개인데다 겹쳐져서 일어나다보니 허무함까지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서 열심히 살 이유가 있을까?’ 또는 ‘일상이 감정에 이렇게까지 영향을 많이 받는데, 스스로를 관리하고 통제해왔던 의미가 전혀 없군’ 이라는 허무주의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5월의 이런 경험들로 인해 위 질문에 대한 답을 얼추 찾을 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답은 다음 회고에 써볼게요.
이런 것과 별개로 스스로에 대한 고찰이 많았던 시간이었습니다.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인간관계에 관한 것이고 하나는 저의 진로에 관한 것입니다. 인간관계의 경우, 스팍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스팍스에 들어온 이후, 되게 많은 부분에서 결이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하고 있는 역할과 제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관계에 대한 부분들, 그리고 의도치 않게 나이 차이에서 오는 부분들까지 결이 되게 달랐던 것 같아요. 아마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몇 몇 스팍스 분들은 알 수도 있지만, ‘스팍스에서 지식적으로 얻을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다.’ 라는 얘기나, ‘적당한 소속감, 적당한 친목, 적당한 일’ 때문에 들어왔다는 얘기를 들었을 겁니다. 실제로 그랬고요. 하지만 이 모든 부분이 막상 해보니 꽤 자기모순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보수로 일을 하는 동아리의 임원진도 해보고, 보수를 받으면서 8개월동안 일도 하고 소비도 해보면서 조직에서 사람의 동기부여에 대한 나름의 가치관이 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보상이 확실할 때, 참여도가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관계가 되었든, 보수가 되었든, 실력적인 면이나 경험치가 되었든 보상이 확실하게 보여야, 사람들은 열심히 참여합니다. 제가 바라는 보상은 유대감 또는 새로운 인간관계였습니다. 같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유대감, 또는 진솔하고 성숙한 사람들과 맺는 인간관계.
전자의 경우, 집단에서 꽤 많은 책임과 역할을 안고 있어야 얻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만큼 리소스를 많이 쏟아야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학점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저에게 이것은 꽤나 부담스러운 부분이었습니다. 3,4월 회고에도 말했지만 생각보다 저는 효율이 안 좋은 사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쏟을 시간이 없으면서 저런 유대를 바라는 것은 무리인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는 저보다 훨씬 많이 집단에서 헌신하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그 분들이 시간을 쓴 만큼 얻어가는 것은 함께 일한 동료들일 것입니다. 제가 아싳에서 어느 정도 얻었듯 말이에요.
후자의 경우, 어느 순간부터 어린 친구들, 그러니까 21학번 이후의 친구들이 꽤나 어려보였습니다. ‘왜 이렇게 어린애 같아보이지?’ 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잘못된 생각임은 이성적으로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더 성숙하다고는 얘기를 못하겠거든요. 동아리 임원진의 대부분이 21,22학번이고 그 친구들은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한 친구들이에요. 제가 아싳에서 그랬듯이 말이죠. 그 친구들에게 어리다고 얘기하는 것은 사실 누워서 침뱉기 입니다. 하지만 그 느낌에 대한 설명이나 반박을 하기가 참 애매했어요. 고민을 조금 하다보니 나온 결론은 누군가에 대해 ‘어리다’는 느낌을 받는 것과 누군가에게 ‘어리숙’하다고 얘기하는 평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에요. 사실 ‘어리다’라는 단어가 제가 받은 느낌을 적절히 표현하지 못하는 단어일 수 있습니다. 고등학생이 중학생을 보거나, 대학생이 고등학생을 볼 때 속된 말로 ‘참 어리네~’라고 하는 것은 그들이 하고 있는 생각과 고민을 다 거쳤기 때문일 거에요. 어른들이 우리 대학생을 볼 때도 마찬가지겠죠? 하지만 그들에게서 배울 점이 없다고 얘기하면 안 됩니다. ‘어리다’라는 느낌을 받으며 뭔가 잘못된 생각인 것 같다는 판단은 이 점을 경계한 것 같습니다. 극단적으로 어른들도 때때로는 어린이의 동심을 배워야하는 순간이 있으니까요. 결국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각자가 처한 처지가 다르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부분이 분명히 친목을 발전시켜나가는 데에는 방해가 되는 건 맞는 것 같습니다. 공감하고 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역이 다르니까요. 결국 저는 진솔하고 성숙한 사람들과 맺는 인간관계보다는 외롭고 싶지 않아서, 나의 처지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싶은 것일 수도 있겠죠.
이 내용의 연장선으로 현 시점에서 가을 학기 활동을 결정해야합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으로부터 하루 안에 결정을 해야하네요. 저는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