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회고 - 컨설팅]
안 쓰려다가 쓰려니까 다소 쓸 말이 많네요..! 글을 쓰려고 24년에 어떤 일을 했나 하나씩 살펴보니 정말 다양하게 해서, 하나씩 정리를 해보려고요. 제 진로 이야기도 살짝 섞어서..! 그 첫 번째인 컨설팅/전략부터 시작해볼게요.
컨설팅 관련 경험을 많이 한 건 아니지만, MSK도 하고 MBB 중에 맥킨지를 제외한 2군데를 모두 다녔습니다. 작년 겨울에는 베인을 여름에는 BCG를 다녔구요. 학부생으로 담글 수 있는 발은 다 담근거 같아요. 보통 어느 분야든 많이 하면 할수록 점점 많이 알게 되는게 당연한데, 이 분야는 더 반대인거 같아요. 저는 특정 분야를 경험할 때, 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보려고 하는데요. 주로 1) 업에 대한 사실들(eg. 연봉, 근무환경 등) 2) 이 일을 잘할 수 있을까 3)이 일을 왜 해야하는가 4) 이 일 이후의 플랜 이렇게 보는거 같아요. 1번을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들이 특히 컨설팅업을 고민하는데 중요한 점으로 작용했던 것 같아요. 정말 의욕이 없으면 힘든 일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저 3가지에 대한 확실한 이유를 만들고 적어도 본인이 납득이 되어야만, 면접에 가서도 설득이 밥벌이인 컨설턴트를 대상으로 확실하게 설득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면접 자체가 하나의 전략이자, 왜 당신이 나를 뽑아야하는지에 대해 설득하는 작업이니까요.
사실 원래 컨설턴트를 희망했던 강력한 이유는 내가 보람을 느낄 수 있고, 잘 할 수 있고, 이후 진로에 선택지가 많기 때문이었어요. 문제 현상을 분석하고 기저의 본질을 파악해서 해결하는 것, 그것이 제가 ICISTS에서 했었고, 스팍스에서도 OTL 팀에 취한 태도이고, 더 나아가서 어떻게보면 제 삶의 태도라고 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여전히 가장 해결이 어려운 문제는 공대식 문제가 아니라 비즈니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제 비즈니스를 대상으로 실제 문제풀이를 배울 수 있다는 점은 굉장히 큰 메리트입니다. 그리고 이 점은 제가 MSK를 하면서도 재밌다고 느낀 순간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현업에서 완전 말단으로서 같이 일을 해보면서 그리고 옆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느낀 점은 사뭇 다르더라구요. 후술하기에 앞서 제가 전략적 사고와 결정을 좋아하고 재밌어한다는 점과 컨설턴트를 함으로써 그 점을 확실히 배울 수 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무조건 100프로 동의하지만, 후술할 생각들이 붙잡기에 더 가치있기에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밝혀놓아요.
우선 이 일을 내가 잘 할 수 있는가? 이 영역은 특정 조건 안에서 정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정말 대가리 박고 열심히 하면 잘 하고, 아니라면 정말 안 좋은 평가를 받는다. 너무 당연한가요 하하. 근데 곰곰히 생각하면 이런 분야가 많이 없는 거 같더라고요. 열심히 해도 잘 못하는 경우도 있고, 굳이 열심히 하지 않더라도 harsh한 평가를 받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을 거에요. 하지만 컨설팅은, 특히 공대생으로 컨설팅은 장단이 명확해지는 신분입니다. 공대생 백그라운드로서 빠른 이해능력, MSK를 통해 기른 논리적 사고 능력으로 베인에서는 짧았지만 좋은 평가를 들었습니다. BCG에서도 업무적인 측면에서는 좋은 평가를 들었습니다. 다만 태도적인 측면에서 비판을 받았었는데, 제 오리지널리티가 공대생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던 것 같아요. 공대생이 아니라 그냥 ‘말단 컨설턴트’라고 생각해야하는데, 약간 한 발 빼고 체험하는 느낌으로 일을 했었고 공대 사고의 틀에서 못 벗어났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다보니 지금 하는 분류가 정확한 분류인지, 통계적으로 보여지는 숫자가 정확하지 않아보이거나, 잘 바뀌지 않는 클라이언트의 태도를 보면서 부질없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닌데 말이죠. 그 숫자를 어떻게든 바꿔서 실무진을 도와 경영진의 생각을 바꿀 수만 있다면 되는 것이고, 그게 컨설턴트가 택한 설득의 방법이었던 것일 뿐이죠. 이렇듯 공대생의 사고와 태도의 전환이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그 전환이 꽤 비가역적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베인에서는 완전 빠져서 일을 했고, BCG에서는 한 발짝 떨어져서 살펴보니 내가 이 일을 열심히 3년 이상 하면 다시 엔지니어링 측면으로 못 돌아오겠구나 싶었습니다.
다음으론 이 일을 내가 왜 해야하는가.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에게 이 답은 ‘보람’과 ‘보수’입니다. 내가 보람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돈 받으면서 할 수 있으면 너무 좋을 거 같아요. 다르게 얘기하면 ‘덕업일치’, 이걸 중요하게 여기는게 아닌가 싶어요. 위 두 가지에서 ‘보람’ 이 부분이 걸림돌이었습니다. 제가 제안한 전략이 실행이 되서, 동작하는 걸 보면 보람을 느낄 거 같아요. 컨설턴트 중에선 실제로 내가 세운 전략이 실행되었는지 확인을 못하거나, 효용이 얼만큼 있었는지 보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 내가 세운 전략이 시장 상황이 변해서 한 달 뒤에는 유효하지 않게 되거나, 클라이언트가 이를 거부하거나, 방향성에는 동의하나 실행하기에는 리소스가 적다는 등의 이유로 리젝되는 케이스를 보니 체감이 확 되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컨설턴트 중 누구에게 물어도 이 사실 자체를 부정하거나, 클라이언트를 탓하거나 하는 등이어서 누구에게도 명쾌하게 해결이 안 되더라고요. 이 답을 BCG 후에 클라썸에 간 컨설턴트분과의 커피챗을 통해 조금은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분이 하신 말 중에 제일 인상깊은 게 ‘실행할 수 없는 전략은 전략이 아니다.’ 였어요. 그리고 본질적으로 컨설팅이 그런 보람을 느끼기 어려운 구조라는 점을 설명해주었고, 컨설팅 안에서 배운 것들이 컨설팅 밖의 세상에서 분명히 도움이 된다는 점을 논리적으로 그리고 명확히 말씀해주심과 동시에 그렇기에 본인은 컨설팅 자체를 ‘자격증’처럼 버텼다고 했습니다. 너무 맞는 말이었고 공감이 되었어요. 그 말이 참이라면, 제가 해야할 고민은 이제 시간의 영역으로 넘어갑니다. 언제든지 딸 수 있는 자격증이라면, 내가 지금 꼭 따야할까? 원래는 지금 아니면 못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이 가설도 MBB 인턴을 하면서, 설명회를 다니면서 틀렸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MBB 인턴을 할 때도, 다른 곳에서 이직하신 분도 계셨고, 설명회에서도 공대 출신으로 삼성에서 오신 분, MSK 선배님의 아내분도 경력으로 이직하시는 케이스를 보면서 사람마다 다 다른 것 같음을 느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후 플랜..! 이 부분은 플랜이 얼마나 명확한가를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얼마나 많은 선택지가 있냐도 큰 의미가 없는 것 같고요. 그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커리어로 다가갈 수 있는가 그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상적인 커리어에 대한 정의와 구체적인 모습을 상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최소한으로 확실한 것은 제가 컨설턴트 이후에 걸어갈 길이 소비재 업종의 임원진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근접한 베스트 케이스는 삼성의 고동진 사장이지만, 가장 워스트 케이스는 이마트 사장입니다. 고동진 사장은 학사 출신으로 임원진까지 오른 케이스로 저는 처음에 이 루트를 컨설턴트라는 방식으로 빠르게 만들고 싶었어요.
이런 관점에서 ex-컨설턴트 커리어의 필수조건으로 고민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공대 백그라운드를 활용함으로써 진입에 대한 해자와 엣지가 존재할 것
2) 그 중에서 특히 CS 백그라운드를 응용할 수 있을 것
3) 작은 것을 성장시키기보다 큰 규모의 고객과 매출을 대면할 수 있을 것
그렇기에 이런 기술적 gap을 메우기 위해서 처음에는 컨설팅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다시 진학하는 것도 고민했고 유니콘 기업의 전략팀장 또는 PM/PO으로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주변 사례나 링크드인을 봤을 때, 뭔가 계속 미스매치가 발생했습니다. 비즈니스로 시작했으면 끝까지 비즈니스이거나 테크라면 테크지, 테크에서 비즈니스로 넘어오는 케이스는 많이 있지 않았고 특히나 그 시작이 카이스트에 개발자 이력을 가지고 있는 저와는 시작점이나 백그라운드가 많이 달랐습니다.
그리고 이 미스매치는 내가 컨설팅 이후에 가고 싶은 도메인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대기업,유니콘 기업이라는 것과 제조업,소비재 도메인을 구분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카카오, 오늘의집, 당근 등의 케이스는 모두 소비재입니다. 반면 제가 원하는 도메인은 기술로 매출을 내는 도메인입니다. 삼성,LG,AWS,팔란티어 등의 회사이거나 기술 기반 스타트업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제가 찾아본 유니콘 기업,회사의 대부분은 오히려 소비재였기에 테크로 시작해서 비즈니스로 전환하는 케이스가 많이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컨설팅으로 첫 커리어를 시작해서 기술 도메인에서 리드급으로 이직하는 경우에 현재 정도의 기술적 커리어가 충분할지에 퀘스천 마크가 남았습니다. 기술 분야의 전문성이 뒷받침이 되어야 남들이 보기에 make sense 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언젠가 비즈니스로 옮겨간다면 커리어에 있어서 1번만 바꿀 수 있는 것이었고, 비즈니스를 커리어의 시작으로 한다는 것은 제가 지금까지 하던 것을 다 버리고 비즈니스 백그라운드로 시작한다는 것이었습니다.이것은 ex-컨설턴트 커리어에서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었지만 위에서 서술하였듯 저에게는 그 가능성이 더 이상 가치있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반대로 생각하면 이는 제가 이 때까지 쌓아온 기술적 백그라운드가 충분치 않음을 반증하는 사실이었습니다.
다른 관점으로는 바로 ‘잘할 수 있는걸로 시작하자’는 것인데, 클라썸에서 온 BCG 출신분과 커피챗을 하면서 많이 느꼈습니다. 그 분은 비즈니스에 진심인 사람이었고, 시작부터 끝까지 비즈니스인 분이었습니다. 그 분과 얘기해보니 경영에 대한 관심으로 사부작 발 담그는 정도의 세계가 아니구나도 많이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 분의 말씀 중에 컨설팅 커리어에 대한 인상적인 평가는 ‘자격증’ 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컨설턴트를 함으로써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했고 - 다양한 도메인, 통일된 프레임워크, 고객 커뮤니케이션과 전략 iteration, long-term strategy 등 - 이것들은 그 자체로 실제적인 능력이라기보다 현업으로 이동했을 때, 좁고 깊어지면서 개화되는 것들에 가까웠습니다. 따라서 컨설팅은 ‘트레이닝’에 가까운 개념이었고 기술적인 부분에 엣지가 있다면 충분히 컨설팅을 통해 비즈니스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있었습니다. 이는 BCG 인턴에서 만난 지인, 링크드인 검색을 통해 검증된 사실입니다.
그래서 일단 잠시 접어두기로 했습니다. 적어도 비즈니스로 옮기는 시기가 지금은 아닌거 같아요. 이를 위해서 링크드인 프로필을 정말 많이 찾아봤습니다. 몇 가지 좋은 레퍼런스도 찾은 거 같아요. 이제는 대학원과 개발자 밖에 없네요. 많이 좁아진 거 같아요..! 물론 추후 비즈니스로 옮기기 위해 남들이 태클을 걸 수 없는 큰 곳에서 시작해야하지만요..!
24년에 특히 연구 활동,개발자 활동도 많이 해서 제 경험을 잘 기록해볼 수 있을 거 같아요..! 다른 글에서 봐요~